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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말 Beautiful sentence

3.24 사 53:1-12 수난의 그리스도

사용자 development world 2019. 10. 19. 20:13

3.24  사  53:1-12  수난의 그리스도

3.24 53:1-12 수난의 그리스도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한주간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일요일 개선의 날 1.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2. 무리의 반응과 예수님 우심눅19:28-40 19:41-44

월요일 권위의 날

1.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2. 두 번째 성전을 깨끗이 하심 마21:18-19, 11:12-14

21:12-17, 19:45-48

화요일 변론의 날 1.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

2. 경고의 세 가지 비유

(두 아들, 악한농부, 혼인잔치)

3. 지도자들과 논쟁

4.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경고 5. 유다의 반역마21:23-27, 20:1-8

21:28-32, 21:33-46, 22:1-1422:41, 20:41-44 24:25, 13, 21:5-38

26:14-16, 14:10-11수요일음모의 날

1.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

26:3-5, 14:1-2, 22:1-2

목요일준비의 날1. 유월절 식사 2. 최후의 성만찬 3. 예수님의 고별설교와 중보기도

26:17-25, 13:1-7 26:26-29, 14:22-25 17, 13:31-35

금요일수난의 날1. 배반당하고 잡히신 예수님 2. 공회앞에 서신 예수님

3.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심 4. 십자가의 죽으심마26:3036-56, 14:2632-52 26:57-58, 22:54-55 27:21-31, 23:1-25 27:31-50, 15:20-46, 23:26-54

토요일 예비의 날 1. 로마병정 예수님의 무덤을 지킴 마27:62-66

그리스도교는 이처럼 주님의 수난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53장의 수난의 그리스도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가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 주님은 이처럼 누구하나 눈여겨보는 사람 없을 정도로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주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대신하는 죽음이었습니다. 한번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죄에 대한 형벌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죽음인데 그 죄의 삯을 대신한 사람이 예수님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고 상함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병에서 나음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죄악으로 제갈길로 행하여 가게 되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대속적인 죽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주님은 자기의 주장을 펼쳐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자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은 마치 어린양과 잠잠한 양같이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고 하는것입니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백성의 허물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예수님의 무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리마데 요셉부자의 무덤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담당하셨으며 범죄자를 위하여 대신 기도하신 분이십니다.

수난의 그리스도 그분은 무죄하시고 범죄하지 않으셨으나 이처럼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죄를 짊어지시고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이 민족의 십자가 그리고 우리 이웃의 죄를 담당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죄없으신 분으로 자기자신을 위하여 변호하지 않고 그리고 억울함도 참으시고 한마디 말도 없이 털깍는자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사신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수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수난이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수난의 그리스도 고난받는 종의 이사야 선지자의 글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고통과 고난은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 고통은 바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며 끝내는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고통 그리고 교회에서의 고통은 반드시 놀라운 축복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통은 필요하였습니다. 종려주일에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종려나무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요 하고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던지고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서 칭송하였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수난의 주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셨고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시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고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하여 제자들은 배신하였고 값비싼 향유옥합을 가진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그 향유를 부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철저히 실패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입장을 변호하지도 않았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침묵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고통은 온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대속적인 죽음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자들을 한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우리의 인생은 고통입니다. 우리의 교회사의 역사도 고통입니다. 수난입니다. 우리 복길교회는 625희생자 1950819일 음력으로 86인의 희생자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 희생자는 우리의 가족이었습니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그 희생의 밑거름위에 평화를 누리고 그 순교의 정신위에 교회는 부흥된것입니다.

지난번 순교지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해미읍성과 그리고 영광염산 야월교회등을 보면서 한마을에 교인 전체65명을 죽이는 만행도 있었습니다. 처음 복음을 접할 때 천주교의 박해현장이었습니다. 그 희생이 바로 한국의 기독교 복음의 축복이었습니다.

같이 가신 사모님이 췌장암으로 여러 암으로 투병하는 모습을 보며 간증을 들었습니다. 항암의 고통 그 고통이 끝나는 죽음이 차라리 좋을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고통속에서 살려주신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저희가 징계를 받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저희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사모님은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부르면서 사모의 일생 사모이기 때문에 수많은 날들을 참아야 했고 눈물흘렸다고 고백하였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사모하는 분은 주님뿐이요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로 고난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고난으로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넘어 축복이 있고 고난을 넘어 부활이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고난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저의 목회에서 그러나 주님은 이 고난을 넘겨주시면서 더 좋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번에 감기로 앓으면서 제가 화를 많이 내서 이런 고통이 오는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감기를 통하여 저의 연약함을 알았고 그리고 남의 고통도 함께 알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고난 십자가 주님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내게 채우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은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우리는 살아서 말하고 당신들은 순교로 말합니다. 우리는 입으로 고백하고 당신들은 목숨을 바쳐 고백합니다. 우리는 숨쉬며 살고 당신들은 숨막혀 순교자로 여기 살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 억울하시고 힘들지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십자가의 수난주간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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